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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9월 10일부로 코로나19 규제를 모두 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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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작성일21-08-28 04:09 조회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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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aug/27/denmark-to-lift-all-remaining-covid-restrictions-on-10-september

https://sum.dk/nyheder/2021/august/regeringen-planlaegger-ikke-at-forlaenge-kategorisering-af-covid-19-som-samfundskritisk-sygdom

백신 접종 완료자 비율이 Our World in Data 기준 71%를 보이고 있는 덴마크는 더는 코로나19가 심각한 사회 위협이 아니라며, 9월 10일부로 모든 코로나19 규제를 풀고, 보건당국의 권한을 평시로 되돌린다고 밝혔습니다.

*덴마크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8월 27일 21:00시, 12세 이상 기준으로 80.2%가 접종 완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에피데믹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며, 상황이 악화되면 빨리 움직이겠다고도 밝혔습니다.)

10만 명 당 일 확진자 수 7일 평균이 유럽 평균에 비해서는 높지만, 영국의 492명보다 낮은 167명을 보이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작년 3월 유럽에서 가장 빨리 부분 봉쇄에 들어간 나라 중 하나고, 거리두기 등 규제를 죄었다 풀었다 해왔으며, 올해 4월 코로나바이러스 패스포트(coronapas)를 개시해서 접종 완료자 등을 대상으로 빨리 (부분) 봉쇄 해제 조치에 들어간 나라이기도 합니다.

덴마크로의 입국 제한/규제가 같이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럽에서 실험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따라가지..

영국도 방역 풀고 나름 잘 지내는거 보면 유럽 백신 우등생 국가들도 점점 푸는 쪽으로 갈것 같네요 ㅎ

https://www.cnn.com/2020/05/23/media/new-york-times-front-page-coronavirus/index.html?utm_source=fbCNN&utm_content=2020-05-24T15%3A01%3A24&utm_term=link&utm_medium=social&fbclid=IwAR33iNCEuzu_H_NaQvWQE2T0Wymjb0hFIAA8FOxm_llZWDnoLGzcRmUr82Y

현지시각 어제 일요일 뉴욕 타임즈의 제1면은 단 사진도, 다른 기사도 없이 단 하나의 이야기만 다뤘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미리 떠난 1000명의 이름과 부고란에서 한마디씩 따온 추모란입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의 코로나 총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어가는 것이 시간문제인 어제 오늘 가슴 착 먹먹하게 만드는 기사입니다

링크된 CNN관련 기사에 소개된 몇 분들의 한마디들의 번역입니다

- Angeline Michalopulos, 92, "was never afraid to sing or dance."
- 안젤린 미칼로풀로스, 92세, "노래하고 춤추는걸 거리끼지 않았다"

- Lila Fenwick, 87, was "the first black woman to graduate from Harvard Law."
- 릴리 펜윅, 87세,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첫 흑인여성."

- Romi Cohn, 91, "saved 56 Jewish families from the Gestapo."
- 로미 콘, 91세, "게슈타포로부터 유대인 56명 구조."

- April Dunn, 33, was an "advocate for disability rights."
- 에이프릴 던, 33세, "장애인 인권를 위해 노력함."

- Patricia H. Thatcher, 79, "sang in her church choir for 42 years."
- 파트리샤 H. 댓쳐, 79세, "교회 성가단으로 42년 활동함."

- Fred Gray, 75, "liked his bacon and hash browns crispy."
- 프레드 그레이, 75세, "바삭한 베이컨과 해쉬 브라운을 좋아함."

- Harley E. Acker, 79, "discovered his true calling when he started driving a school bus."
- 할리 E. 액커, 79세, "학교버스 운전을 시작하며 삶의 목적를 찾음."

- Frank Gabrin, 60, was an "emergency room doctor who died in his husbands arms."
- 프랭크 가브린, 60세, "응급실 의사. 남편의 품안에서 떠남."

- Skylar Herbert, 5, was "Michigans youngest victim of the coronavirus pandemic."
- 스카일러 허버트, 5세, "미시간의 가장 어린 코로나 사망자."

= Philip Kahn, 100, "World War II veteran whose twin died in the Spanish Flu epidemic a century ago."
- 필립 칸, 100세, "세계 2차대전 참전용사. 쌍둥이 동생은 100년전 스페인 독감으로 먼저 떠낫다."

- William D. Greeke, 55, "thought it was important to know a persons life story."
- 윌리엄 D. 그리크, 55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대부분 노인이네 ㅠ

늘 일반인의 죽음은 더 공감됩니다

미국인구가 3억?이고 우리나란 5천만이니까.. 6배차이면 1.6만일 것 같아요.

미국 10만이면 우리나라 1만은 되겠군요. 우리나라에서 1만명이 사망했다 생각하면......

https://news.v.daum.net/v/20200514112844961

옴마야...
저 동네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지옥이네요ㅠㅠ
오히려 이짝보다도 더 한 듯. 브루~라이토 요코하마~~~

이번 경비아저씨 사건을 접하고 마음이 아프고 먹먹하더라고요ㅜㅜ
그래도 이런일 하나하나 기사화되고 알려지면서 사회가 선순환적으로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IMF 때만해도 누가 사기를 치건, 갑질을 하건, 생활고에 일가족이 자살을해도 그냥 흔히 한줄 기사화되고 넘어가던 일로 기억합니다.
많은 일들을 격으면서 사회와 시민의식이 발전하였고 개인적으로 지금도 충분히 좋은 나라인 동시에 더 나아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하! 그런 의미셨군요... 근데 4일 동안 160킬로미터면 하루 평균 40킬로, 하루 8시간 꼬박 걸으면 시간당 5킬로미터... 이건 거의 성인 남성이 보통으로 걷는 속도거든요? 게다가 저기는 도로 사정도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말이죠. 이렇게 계산하다 보니 새삼 울컥해지네요 ㅠㅠ

링크한 뉴스랑 닉언일치여서...ㄷㄷㄷ

멜로디가 귀에 들리는 듯 하지 않습니까? "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
영화 보다가 노래에 꽃혔습니다? 트로트하면 역시 본토 트로트!!

작성자님 닉 상테가...

그런 나라는 없겠죠. 그렇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ㅠㅠ

말씀하신 단체의 "불평등해소실천지표 2018"라는 자료를 보니 조사 대상 157개국 중 한국이 56위이고 인도는 147위로 끝에서 11등이네요. 그럴 만 한 것 같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를 꼽는게 더 쉬울겁니다.

인도의 빈부격차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 옥스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1%가 전체 부의 58%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경비원 아저씨도 갑질 때문에 자살하셨고 가끔 그런 갑질 사건이 일어나곤 해서 한국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저긴 정도가 너무 심하네요.

이짝...이라고 하기에는 전세계 어딜봐도 우리나라만한 나라는 없을걸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사람들이 아닌 듯 싶어요.

인도 얘기 아닌가요? 오히려라고 하기에는 인도는 한국에 비교 자체가 안 되죠...

https://news.yahoo.co.jp/articles/79997ea43bae28a6b13a20bd899f0d3cfcd69e5e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약 4km 떨어진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작은 비석이 있다. 후쿠시마 현 오오쿠마 정(町)의 키무라 노리오 씨(55세)가 2013년 여름, 쓰나미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집 뒤 언덕에 만들었다. 「계속 그대들과 함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옆에는 귀여운 지장보살님. 과자와 꽃으로 잔뜩 둘러싸여 있다.

1월 초순, 키무라 씨는 비석 앞에 웅크리고 앉아 헌화용 물을 갈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뒤에서 반려견 도베르만 베르가 몸을 부벼 온다.

"알았어, 알았어." 키무라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 찾으러 갈까" 하고 베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진 이전, 키무라 씨의 자택은 모래 해변에서 약 100m 떨어진, 해면보다 조금 높은 농지 옆에 있었다. 부모님과 아내, 두 딸의 2세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11년 3월 11일, 키무라 씨는 인근 후쿠오카 정의 양돈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큰 흔들림 이후 오오쿠마 정으로 돌아와 보니, 자택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 있었다. 피난소가 되어 있던 마을 체육관에 가 보니, 어머니 토모에 씨(82세)와 장녀 마유 씨(20세)가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와타로 씨(당시 77세)와 아내 미유키 씨(당시 37세), 차녀 유우나 씨(당시 7세)가 행방불명이었다.

오후 5시 즈음, 자택 주변의 수색을 시작했다.

"유우나― 미유키―" "있으면 목소리를 내 줘―"

땅거미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쳐 보지만, 대답이 없다.

오후 7시 즈음, 집 뒤 언덕에서 베르가 모래투성이로 뛰쳐나왔다. 평소와는 달리, 목줄이 매여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지진 후에 누군가가 집으로 돌아와, 베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도망치려고 했던 게 아닌가. 그때 쓰나미에 휩쓸린 게......"

밤을 새워 찾아다녔지만, 결국 3명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원전이 위기상황에 빠졌다. 키무라 씨는 토모에 씨, 마유 씨와 함께 오오쿠마 정으로부터 피난을 강제당했다.

1주일 후, 키무라 씨는 피난을 갔던 아내의 친정 오카야마 현에서, 3명을 찾기 위해 오오쿠마 정으로 돌아오려 했다. 그러나 원전을 약 30km 앞둔 길에서 경비원에게 제지당해, 마을로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행방불명이 된 3명의 사진과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적은 전단지를 만들어, 피난소 등지에 나눠주며 돌아다녔다.

4월 말, 집 근처에서 아버지 와타로 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6월, 해상에서 4월 10일에 발견된 시신이, DNA 감정 결과 아내 미유키 씨로 판명되었다.

키무라 씨가 휴대전화로 경찰의 미유키 씨 사망 확인 연락을 받았을 때, 곁에는 장녀 마유 씨가 있었다. 마유 씨는 온몸을 떨며,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입은 크게 벌어진 채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침대 위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계속 울었다.

이듬해 12년 봄, 키무라 씨는 내륙부인 아이즈와카마츠시의 가설주택에 살기 시작한 토모에 씨를 남겨두고, 마유 씨가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오오쿠마 정에서 약 300km 떨어진 나가노 현 하쿠바 촌(村)의 옛 펜션을 구입하여 딸과 함께 이주했다. 그리고 거의 매주 출입허가를 취득하여, 찾지 못한 유우나 씨를 찾으러, 편도 약 7시간을 들여 오오쿠마 정을 다녔다.

방호복으로 몸을 감싸 땀투성이가 된 채로, 집 주변이나 바닷가의 흙을 삽으로 파냈다.

자원활동가도 힘을 합쳐 수색을 계속한 결과, 50점이 넘는 유우나 씨의 신발이나 옷 등이 발견되었다. 한참 지나서는, 미유키 씨의 글씨로 쿠마 정 소학교 1학년 2반 키무라 유우나라고 적힌 이름표를 붙인, 작은 파란색 체육복도 나왔다.

그리고 16년 12월 9일, 집 근처의 잔해 밑에서 어린이용 목도리와 함께 작은 목뼈와 턱뼈가 발견되었다. 키무라 씨가 "이 목도리 기억하니"라고 묻자, 마유 씨가 대답했다. "응, 나랑 똑같이 맞춘 목도리였어."

DNA 감정으로 약 10일 뒤, 유우나 씨의 유골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진으로부터 6년이 지나던 시점이었다.

1월 초순의 오오쿠마 정. 집 주변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주변은 제염으로 발생한 오염토를 쌓아 놓는 중간저장시설이 되어, 오염토를 나르는 덤프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린다. 키무라 씨의 집도 저장시설 예정지에 포함되어 있으나, 정부의 매수 교섭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유우나의 유골 중 8할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나라가 중간저장시설로 만들려고 하는 땅은, 저한테는 유우나의 뼈나 유품이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땅인 거예요."

비석이 있는 언덕 위에서는 태평양이 보인다. 때때로,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 올라온다. 키무라 씨는 언덕을 내려가 모래 해변으로 향했다. 지금도, 애견 베르와 함께 집 주변이나 바닷가를 걸으면서 유우나 씨의 유골을 계속 찾고 있다.

베르가 기쁜 듯이, 원래 가족 4명이 함께 놀았던 모래 해변을 뛰어 돌아다닌다.

"어이, 베르!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모래 해변에서 육지 쪽으로 올라와, 키무라 씨는 마른 풀을 헤치고 원래 밭이었던 땅으로 들어갔다. 십수 미터 정도 나아간 배수로 옆에는 5미터 사방의 풀이 깎여 있고, 작은 꽃이 놓여 있었다. 유우나 씨의 목뼈와 턱뼈가 발견된 장소다. 키무라 씨는 웅크리고 앉아 두 손을 모은다.

더 이상 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다. 한 번 더 만나서, 이 가슴으로 끌어안아 주고 싶다―

"부모라면 누구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라고 키무라 씨는 바닷바람 속에서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히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벌써 10년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제게는 아직, 겨우 10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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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1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떠난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동아리방에 앉아 빈둥거리다가 뉴스를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해 가을 교환학생을 가서는,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자원활동 모집 전단지를 보고 도호쿠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쌀 2킬로그램과 감자 양파 몇 개와 무 반 토막을 받으러 나오셔서는, 멀리서 온 학생들 고맙다고 웃으시던 가설주택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폐허 한가운데의 분향소에 누군가가 갖다놓은 불상과 크리스마스 트리. 망가진 건물의 모습에 아연해지던 중 한쪽 벽에 적힌 전원 무사합니다 090-XXXX-XXXX를 보았을 때의 그 구원받은 기분.
몇 년 전부터 2021년에는 도호쿠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가 원망스럽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다시 갈 거예요. 아 그분 너무 안타깝죠ㅠㅠ 자식 잃은 부모님들의 심정이란...

송혜희씨 아버님이 생각나네요..

와 저는 이 이야기는 또 처음 봤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잠수를 배워 매주 아내 유해를 찾는 분 이야기도 오늘 많이 나오더군요. ㅠㅠ

https://twitter.com/i/events/137002918725216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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